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순수한 집회란 없다!

by 심원. 2008. 7. 4.

지겨운 순수타령 촛불집회에서도 여전하다.

순수하던 촛불집회가 변질되었단다.

그러데 물어보자. 순수가 뭐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촛불을 들었던 처음의 순수함이 사라지고,

촛불집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때문에 촛불집회가 변질되었다"

내가 궁금한 점은 이거다.


왜 국민의 건강을 위해 촛불을 든 행위는 순수하며,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건 순수하지 않은가?

내가 보기엔 둘다 매우 정치적인 행위였고,

구태여 순수라는 말을 붙일 까닭이 없다.

순수했던 것이 변질된 게 아니라

촛불집회가 다루는 문제의 폭이 확대된 것일 뿐이다.

건강을 위해서 든 촛불은 순수하고,

대운하 비판을 위해서 든 촛불은 불순하다?

교육정책 비판을 위해서 든 촛불은 불순하다?

공기업 민영화 반대를 위해서 든 촛불은 불순하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도 말한다.

"비폭력이었던 집회가 폭력적으로 바뀌었으므로 촛불집회는 변질되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어떤 경우에도 비폭력만이 순수하다는 생각은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그럼, 폭력무장투쟁을 벌이던 독립군과 군사독재에 폭력적으로 대항했던

80년대 시민들은 순수하지 않은가?(순수라는 게 있다면)


그럼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지금이 일제시대고 군사독재 시대냐?

물론 아니다.

그럼, 시민들을 방패로 찍고, 군화발로 짓밟는 경찰의 행태는?

지금이 일제시대고 군사독재 시대냐?

폭력을 비판할 거면, 시위대에게만 평화집회를 요구하지 말고,

경찰에게도 평화적 대응을 요구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실정법을 지켜야 한다. 촛불집회는 원래는 집시법을 어기는 행동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법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있는 거다.

시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법은 어겨서 깨뜨려야 한다.

역사적 변화는 사람들이 법을 잘 지킬 때 일어나기 보다는

법을 어길 때 일어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법을 어길 때는 그마한 이유가 있는 거다.


어떤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묻고 싶다. "넌 이성만 갖고 사냐?"

그리고 "정말로 가장 중요한 게 이성적 판단이냐?"

시민들이 뿔났다. 뿔난 사람들에게 이성적으로 말하면 듣던?

뿔난 사람을 달래는 방법은 진심을 보여주거나,

거짓말이라도 잘해서 진심인 척하고 있는 게 티나서는 안 된다.

티나면 더 삐진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대응은 진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대통령이 일주일에 두 세번씩 말을 바꾸는데,

누가 거기서 진심을 읽고, 화를 풀겠는가?

집단지성 못지않게 집단감성이 중요한 거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촛불집회에 배후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대책위가 평화집회 약속을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대책위가 평화집회 약속하면 평화집회가 되나?

집회에 모인 사람들 하나 하나가 평화적 집회를 원해야 그렇게 된다.

촛불집회는 기존의 집회와는 다르다.

사람들은 왔다 가고, 갔다 오고 왔다 갔다 한다.

참여자와 비참여자를 구분하기도 애매하고

중심과 주변을 구분하기도 애매하다.

최선두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사람들이 중심인가?

아니면 맨 뒤에 주저앉아 다리 주무르는 사람들이 중심인가?

장소가 있고, 사람들은 "들렀다" 가는 거다.


순수한 집회란 없고, 순수함이란 불순함을 처벌하기 위한 레토릭일 뿐이다.

지겹다. 이 놈의 말장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