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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친절한 기사님

by 심원. 2008. 3. 21.

버스를 탈 때, 처음 만나는 사람은 언제나 버스 기사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 본 버스 기사는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성깔있는 기사, 평범한 기사, 친절한 기사. 물론 평범한 기사가 성깔있는 기사로 변신할 때도 있다. 이 중에서 연구대상은 친절한 기사다.


친절한 기사들의 특징은 손님이 타고 내릴 때, 인사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친절한 기사는 헤드셋을 끼고 직접 정류장을 소개한다. 그리고 더 친절한 기사는 직접 음악을 선곡하기도 한다. 그들은 왜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 어찌보면 과도한 친절을 베푸는 걸까? 그들에게 물어볼 때 들을 수 있는 일반적인 대답은 다음과 같다. 아마 가끔 TV에서 소개되는 특이한 기사들의 대답과 유사할 거다.


"친절하게 대하면 손님들이 기뻐하고, 피곤한 손님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릴 수 있엉서 그렇게 합니다. 또, 손님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마음이 기뻐지기도 하고요."


정말 이런 이유 뿐일까? 아니, 정말 이런 이유에서 그렇게 번거로운 친절을 베푸는 걸까? 버스에서 그렇게 친절한 그 기사들은 집에서도 가족들에게 그렇게 친절할까? 물론 이런 걸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어렵겠지.


아마도 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남들과는 조금 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을 거다. 예를 들면, 레코드판 수집이라든가, 우표수집이라든가. 왜냐하면 그들은 그냥 살기 보다는 삶의 의미를 찾는 데 관심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없는 사람이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날마다 그런 친절을 베풀리는 없다.


어쩌면 그들은 젊은 시절에 남들 앞에 나서서 뭔가 근사한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헤드셋을 끼고 뭔가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꽤나 근사하게 여겨졌을 수도 있다. 어쩌면 DJ를 꿈꾸던 기사도 있지 않을까? 날마다 자신이 선곡한 곡을 들려주면서, 손님들의 반응을 살피고 간혹 진지하게 음악에 심취하는 손님을 보면 내심 흐뭇해 하면서. 간혹 어떤 손님들은 음악에 관해서 물을 수도 있고, 기사 아저씨의 친절함에 대해서 고맙다는 말을 건낼 수도 있다. 그러면 그는 더욱 친절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거겠지.


어쩌면 그들은 TV에서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친절한 기사님들을 보고 직업관에 변화를 일으킨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게 회사의 방침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카메라가 기사를 감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모든 사람이 친절한 기사님의 친절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까? 물론 아닐 거다. 어떤 이는 나처럼 의아해 할 수도 있겠고, 어떤 이는 '운전이나 잘 할 것이지, 좋지도 않은 목소리로 버스 정류장 안내는 왜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또 어떤이는 일말의 불안감ㅡ저렇게 정신을 분산해서 운전하다 사고가 나는 건 아닐까ㅡ을 느낄 수도 있을 거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친절한 기사님의 친절한 목소리에 마음이 편해짐을 느낄 거다.


오늘 집에 올 때 타고왔던 버스 기사의 친절함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들이 운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를 친절하게 맞아 줄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는 있는걸까?"